역사적으로 건축과 대지의 갈등은 지속되어 왔지만,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르 코르뷔지에가 “건축은 거품과 같다. 내부에서 호흡이 고르게 분포되고 조절된다면 거품은 완벽하고 조화로울 것이다”라며 건축을 비누 거품에 비유한 것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는 맥락주의자 토마스 슈마흐마저 “거의 아무도 건축 외부의 것이 내부 배치를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건축의 외형은 내부의 것에 의한 결과이다”라고 말한 것과 유사하다.
하지만 거품은 결국 사라진다. 공중에 떠다녀도 여러 가지 외부 힘의 영향을 받는다. 중력이 물 분자를 구형의 하단으로 끌어내려 막을 불규칙하게 만들거나, 기압의 변화에 따라 표면이 변형되기도 한다. 그러다 결국 거품은 표면이나 물체와 접촉하여 파열된다. 거품에게 있어서 장소와 맥락과의 만남과 변형은 피할 수 없다.
르 코르뷔지에 의해 대표되는 현대 건축의 건축 거품 모델은 “Living on Earth”개념이다. 그러나 땅에서 떠다니는 거품이 결국 파열되는 것처럼, 저는 현대 건축이 건물을 독립적인 개체로 보기보다는 땅과 함께 공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건축은 유기체로서 복잡하고 독특한 도시 네트워크의 일부로 간주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에 렘 쿨하스가 “Fuck Context"라는 메니페스토와 함께 이러한 거품론적 프로그래밍의 경향을 다시 일으켰고, 그 결과 포커스는 건물 내부로 향했다. 쿨하스는 그가 자주 인용하는 Bigness에 관한 논문에서 건축과 도시 환경의 관계를 연구하여 건물을 외부 조건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자유롭게 존재하는 독립된 물체로 이해할 것을 촉구했다. 쿨하스는 건축이 자주 장소와 문맥에 밀려 수동적으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자체적인 존재 이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쿨하스의 건축 이론은 보기에는 코르비지의 건축 거품 모델과 "Living on Earth"의 개념을 계승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쿨하스의 건축 이념은 더 많이 "Living IN Earth"에 가깝다. 건물의 프로그래밍 및 장소와 관련이 없는 건축 자체의 존재 이유는 실제로 건축이 자체적인 문맥을 가져야 함을 의미한다. Bigness에 관한 쿨하스의 논문에서 제시한 것처럼 건축의 내부적인 문맥과 그것의 장소적인 문맥은 결합되어 있으며, 건물의 피부만이 그 연결을 잘라버린 것뿐이다. 쿨하스의 일리노이공과대학교 학생 활동 센터(IIT McCormick Tribune Campus Center)는 그의 건축과 도시적 문맥의 관계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
현대 건축의 "living in earth" 개념은 20세기 50년대 후반 건축 조직 "Team 10"이 제안하고 발전시킨 건축 프로토타입 "매트 빌딩(Mat-building)"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매트 빌딩은 영국 건축가 앨리슨 스미슨(Alison Smithson)이 1970년대에 "MAT-BUILDING을 어떻게 식별하고 읽을 것인가"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며 공식으로 논의한 것으로, "정확하게 조절된 그리드 기반에서 조직된 대규모, 고밀도의 구조"를 의미한다. 스미스는 매트 빌딩을 익명의 집단 공간의 압축된 형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여기에서 기능은 공간 질감을 풍부하게 하는 내재의 의미로 사용되며, 상호 연결되고 밀접한 패턴을 통해 공간의 재구성과 새로운 질서의 정의가 이루어지며, 성장, 감소 및 변형의 가능성을 남겨두어 개인이 새로운 행동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한다.
매트 빌딩의 제안은 팀 10의 이론과 프랑스 구조주의에 기초하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중유럽 지역이 전후 복구에 급히 나섰을 때,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중산층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유연한 계획을 제안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유연성과 성장 가능성의 개념은 매트 빌딩의 주요한 공간 이념이 되었다. 매트 빌딩은 건축과 도시 및 환경 풍경 간의 새로운 관계를 다시 탐색한다. 르 코르비지에는 그의 후기 작품인 베니스 병원에서 매트 빌딩을 통해 장소의 맥락에 대응한다. 이는 코르비지에가 건축과 장소의 관계에 대한 생각이 변했다는 것을 보여주며, 현대 건축에서 동시대 건축으로의 전환은 "Living on Earth" 패턴에서 "Living in Earth" 패턴으로의 변화에 있다.
스후마헤르는 20세기 도시를 두 가지 간단한 개념의 불조화하고 무질서한 조합이라고 정의한다. 첫 번째로는 네트워크, 광장과 "골목(street corridors)"으로 이루어져 있는 전통적인 도시이다. 이는 공간을 드러내고 건물의 부피를 잊기 위해 배열된 건물들의 연속성을 대표한다. 도시에어의 공간(void)은 솔리들 사이에서 조각내어 파이며 형성된다. 그리고 그것의 구성 수준에서 이해하기 어려워 보이더라도, 그것은 장소에 강한 정체성을 제공하며, 중요한 모듈러리티, 총향과 익숙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그는 르네상스 건축물들로 인해 변형되고 비틀어진 역동적인 중세 도시의 맥락을 예로 든다.
두 번 째로는, 맨해튼의 할렘(HARLEM)을 예로 듭니다. 등간격의 그리드는 서열(hierarchy) 없이 활동의 중심 또는 중요한 건물을 위한 장소를 남기지 않는다. 교차로는 어떠한 계층(hierarchy)도 제공하지 않는다.이것은 중세 도시와는 정반대이다. 왜냐하면 모든 거리가 동일하며, 초기 방향성이 변질되며 방향 감각을 상실하게 된다. 차이 없는 공간이 반복되므로 "장소"의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공간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러한 현대 도시들은 스후마헤르 자신이 "공원 속 도시"라고 부르는 것처럼, 건물들로 하여금 형성되는 보이드가 아닌, 각자의 부피와 위엄만을 강조하는 고립된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현대 건축가들은 건물을 "이상화"하며, 양식을 우선순위에 두거나, 기능이나 프로그램을 표상화하는 것을 선호한다. 현대 건축가들은 건물에 완전히 맥락적인 접근을 취하며 "figure"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ground(context)"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스후마헤르는 이러한 건축가들이 "이상적인" 형태가 조각으로 존재할 수 있고 맥락이 변화할 때도 영속적으로 발전하고 자기생성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점을 비판한다.
매트 빌딩이 장소에 조화롭게 속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의 성장, 감소 및 변경 가능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특성으로 매트 빌딩은 도시의 맥락을 건물 내부로 가져와 건물 내외의 사용자 경험을 연결할 수 있다. 매트 빌딩은 일반적으로 대규모 건물 집합의 형태로 나타나지만, 매트 빌딩 프로토타입에서 발전한 쿨하스의 아가디르 콘퍼런스 센터 역시 장소의 맥락에 속한다고 볼 수 있으므로 나는 그것이 건축으로서 맥락 자체를 내포하는 중요한 건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쿨하스가 말했듯이 개별 건축물은 일정 척도를 넘어설 때 건축 형태의 아름다움은 가치를 잃게 되므로, 나는 매트 빌딩의 프로그래밍 형태로 건물에 대응하는 것이 장소에 속하는 건물을 만드는 동시대적 원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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