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상적인 장식을 배제하는 기능주의 디자인 준칙인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그러나 이 주장을 처음 내세운 사람은 다름 아닌 장식의 대가 루이스 설리반이었다.
19세기 후반 산업화에 가속이 붙고 기술이 발전하며 높은 강철 초고층 빌딩의 형태가 가능해졌다. 전례 없던 새로운 빌딩 형식의 건축이 출현하고 보편화되기 시작했기에, 수 세기동안 반복되어 온 ‘형태는 전례를 따른다’는 고전적 이념과는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형식의 건물을 디자인할 필요가 있었다. 디자인을 고전 양식, 즉 비례와 수학적인 것에 구속되어 있는 것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줄 새로운 합리적인 디자인 철칙이 필요했던 것이다.
최초의 ‘마천루’ 설계의 반열에 올라있던 루이스 설리반은 따라서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새로운 준칙을 내세운다.
Whether it be the sweeping eagle in his flight, or the open apple-blossom, the toiling work-horse, the blithe swan, the branching oak, the winding stream at its base, the drifting clouds, over all the coursing sun, form ever follows function, and this is the law. Where function does not change, form does not change. The granite rocks, the ever-brooding hills, remain for ages; the lightning lives, comes into shape, and dies, in a twinkling.
It is the pervading law of all things organic and inorganic, of all things physical and metaphysical, of all things human and all things superhuman, of all true manifestations of the head, of the heart, of the soul, that the life is recognizable in its expression, that form ever follows function.This is the law.
날아가는 독수리든, 활짝 핀 사과꽃이든, 수고하는 일마든, 유쾌한 백조든, 가지를 뻗은 참나무든, 그 밑바닥에 흐르는 구불구불한 시냇물이든, 흐르는 모든 태양 위에 떠도는 구름이든, 언제나 형태를 이루고 있다. 형태는 언제나 기능을 따른다. 기능이 변하지 않으면 형태도 변하지 않는다. 화강암 바위, 그리고 항상 우울한 언덕은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다. 번개는 살아서 모양을 이루고, 반짝거리는 사이에 죽는다.
유기물과 무기물 모두, 물리적인 것과 형이상학적인 모든 것, 인간과 초인간적인 모든 것, 머리와 가슴과 영혼의 어디서든 형태는 항상 기능을 따른다. 이것이 법이다.
설리반의 따르면 건물의 목적이 건축물의 형태를 결정한 새로운 지침이었으며 기능주의적으로 보이는 이 선언은 당시의 2차 세계 대전 이후 도시를 재빠르게 복구해야 할 필요와, 엄청난 높이의 건물을 지어 올림에 있어서, 혹은 수만 개의 제품을 똑같이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효율’이라는 개념을 형태에 적용시켜야 하는 시대상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 루이스 설리반은 장식을 배제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었다. 마천루시대에 그의 초기 대표작 Wainwright Builiding(1891)을 보면 화려한 유기적 장식이 건축 외부와 내부를 장식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에게 있어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것은 디자인에 유익한 효과를 제공하는 한 장식을 허용한다는 것이었고. 거의 최초의 마천루를 설계함에 있어 그는 장식과 함께 “자랑스럽고 솟아오르는 것(a proud and soaring thing)”의 기념비적인 건축을 남기고 싶어 했었다.
설리반의 장식은 지지 교각(piers)을 기둥의 한 부분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건물의 창문과 바닥판은 "수직 미학"을 강조하기 위해 기둥 뒤에 퇴행되어 삽입되었다. 각 층의 수평적인 장식은 유기적인 형태를 띰으로써 건축 파사드에 스며들어 수직적 기둥을 강조함으로써 마천루의 '솟아오름'을 위한 배경이 되어 주었다.
그 이후 아돌프 루스의 "장식은 범죄”선언과 함께 르 코르뷔지에, 발터 그로피우스, 미스 반 데어 로에 등 모더니스트 건축가들은 '장식은 범죄다'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는 두 가지 원칙을 도덕 원칙으로 삼아 디자인에 적용했다. 이 두 원칙은 근대건축의 기반을 다졌다.
하지만 설리번의 ‘기능’은 공간의 맥락과 문화의 상징성, 상업시설이 지녀야 할 대중친화성과 장식성 등을 포괄하는 ‘유기체적 기능’이었고, 루스의 메시지 역시 ‘장식= 불순물’이 아니라, 기능적 맥락을 벗어난 잉여의 장식을 경계하자는 거였다. 설리반의 슬로건은 숱한 오해와 논쟁을 낳았고 결과적으로 건축과 디자인 등 실용예술 전반의 유구한 두 가치, 즉 유용성(기능)과 미학(형태)의 관계에 대한 예술적 성찰을 심화했다. 오해란 기능에 대한 오해, 즉 건축의 구축적(tectonic) 편리성이나 용도에 종속된 기능으로 그의 말을 왜소하게 이해한 데서 비롯됐다.
어쨌든 오해와 왜곡을 통해 그 시대를 대표하는 매니페스토가 된 이 두 가지 선언은, 그 이후의 근대 건축은 기능에 직접적인 개입을 하지 않는 장식적 요소를 배제할 것. 모든 형태의 구성 요소는 구조적인 혹은 기능적인 역할을 할 것. 나아가 사치가 아닌 효용에 기반을 둔 도덕적인 이상을 가질 것으로 변질되게 되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모던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이념으로 많은 디자이너들이 적용하고 해석해 왔으며 독일의 바우하우스로 대표되는 현대 디자인 교육의 기본으로 받들어질 만큼 지난 100년간 건축의 형태-기능 합리론적 논쟁의 초석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산업화와 경제 논리에 입각하여 디자인해야 했던 시대가 지나간 만큼, 동시대 건축이 아직도 기능주의적 디자인을 고수해야 할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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