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주체문제와 변증법적 사고체계 / 건축의 합리성과 낭만성
건축철학과 관련하여 우선 화두가 되는 것은 근대철학의 주체문제와 변증법적 사고체계이다. 이것이 이 책에서 다루게 될 첫 주제이다. 건축적으로는 이와 관련하여 ‘건축의 합리성과 낭만성’이라는 틀로 분류하는 체계를 살펴보는 것이 유용한다.
- 철학의 주체문제와 존재론은 무엇일까?
- 철학의 주체문제와 건축과 연관하여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일까?
- 변증법적 사고체계는 무언인가?
- 변증법적 사고관과 시민계급 경제성장의 의미는 어떠한 관련성을 맺고 있을까?
- 테카르트와 스피노자의 사고체계의 철학적 차이는 무엇인가?
- 르네상스 건축 및 바로크 건축과 철학적 사유의 유사성은 무엇인가?
- 건축에서의 합리성과 낭만성이라는 분류기준 및 변증법은 어떠한 관련성을 맺고 있는가?
1 | 근대철학의 양면성과 변증법적 역사관
근대철학의 주체문제
근대 철학의 출발점은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문장과 함께 발아하게 된다. 중세시기까지 모든 신이 세계의 중심이 되어 운행되었던 체계에서 벗어나 인간 자신이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생각하고 있는 자신이라는 주체와 객체, 즉 그 외의 다른 모든 것을 철저히 분리하는 것이다. 인간을 둘러싼 자연세계로부터의 독립이다. 혹은 객체의 대상화라고도 한다.
중세적인 경제적 관념에서 벗어나서 시민계급이 서서히 부를 축적하고 길드조직 이후의 일반시민에 의한 자본주의적 성격의 성향이 본격적으로 성장했다. 이에 따라 신으로부터 독립된 인간 주체의 '이성'이 촉망받는 시대가 도래하였다.
그에 따라 주체와 객체를 사유하는 존재론의 다양한 관점이 나타나었다. 건축 역시 각 주체 혹은 역할자 간의 작용방식에 따라 다른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
건축분야는 다른 예술분야와는 달리, 다양한 주체와 외적변수에 영향을 받는다. 분야가 전문화, 분업화되는 현실을 고려했을 때 향후 참여자들은 더 늘어나게 될 것이다. 건축물은 이렇게 다양한 주체들의 의견과 의도(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때로는 힘겨루기 및 의견조정을 거쳐 하나의 건물 또는 사물(객체)로 빚어진다. 이런 특성 때문에 건축물은 시대정신과 시대성을 지니는 산물이 될 수밖에 없다.
한편, 건립 주체가 아닌 지어지는 건물을 그 대상으로 했을 때는 관계 맺는 그 지역의 단지 수준의 스케일, 더 넓게는 도시와 어떠한 관계를 맺도록 설계가 되어야 할 것인가? 이런 문제에 따라서 건축이 주체가 되고 도시가 대상 및 객체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건축가가 도면을 그리는 과정을 고려한다면 건축가의 사고와 최종 도면을 주체와 객체로 볼 수도 있다.
변화하는 주체와 객체의 관계 속에서 건축은 다차원적인 복합성을 지닌다. 건축의 이런 특성은 최근에 떠오르는 객체-지향 존재론과의 면밀한 관계를 상기시킨다.
대립적 사고와 변증법적 사고
데카르트는 세계에는 생성시키는 자연의 근본적 속성이 있고 그에 따라 만들어진 다양한 양태의 사물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이후, 자연의 생성의 속성의 일부가 변하여 존재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이로부터 창출된 변증법적 체계로 사고하는 것이 유행이었던 최고 정점의 시기는 과학과 이성에 의해 이루어졌던 근대적 특성이 사회를 급진적으로 변화시켰던 시기와 일치하고 있다. 합리적인 사유체계의 최정점을 다루는 정, 반, 합의 매개과정은 선적인 '방향성'을 띠고 있다. 헤겔은 이러한 발전과정을 통해 인류역사의 발전이 이루어지게 된다고 보았다.
칸트는 순수이성과 실천이성으로 나누어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와 무엇을 행하여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이성적으로 분석했다. 이어 피히테는 순수이성과 실천이성을 나누어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종합하여 사고해야 하며 이 두 가지가 합쳐져서 나오는 것이 행동의지라고 설파했다. 정, 반, 합의 움직임은 행동에 의해 실질적으로 변화되는 것이 그 동력이 되고 이것이 역사의 발전으로 이어진다고 보았던 것이다. 헤겔은 이러한 종합에 의한 변증법적 사유체계를 정립하고 정교화시켰다. 변증법적 사유는 발전의 방향성이라는 사유의 전통을 지닌 독일 관념론에 계보를 잇고 있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선비판에서 이성의 축복으로 생각하는 과학 기술에 대해 정당한 권위를 부여했다. 다만 과학기술에 내재될 수 있는 이기심을 극복하기 위해 이론적 이성과 함께 양심적 실천 이성을 사회도덕적으로 결합해 실천해야 함을 요구했다. 두 개의 상반된 질서를 통합시켜 인간철학으로 해결하고자 했던 것이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은 인간의 이율배반적인 상황을 드러낸다. 이와 같이 모더니티의 특성과 모더니즘적 속성을 잘 사용하면 천국과 같은 긍정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지만 동시에 잘못 사용하면 2차 세계대전과 같은 지옥과 같은 상황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헤겔은 변증법적 방법론을 통해 칸트의 순수이성과 실천이성 사상을 통합하여 이성의 진보에 따라 '절대정신'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순수이성과 관계된 자본적 과학기술주의와 실천적 도덕적 이성이 주가 되었던 사회주의적 실험은 결국 엄청난 사회적 대립과 투쟁을 불러일으켜 인류의 커다란 비극으로 귀결되었다.
제국주의와 1차, 2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결과는 서구의 이성적 사유가 만들어낸 어두운 그림자였다.
2 | 건축의 합리성과 낭만성 분류
이성의 분류체계와 변증법적 변화
합리성과 낭만성은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양극적 특성이다. 이러한 분류방식을 예술에서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상대적인 것으로 언급하기도 한다. 태양의 신 아폴론은 밝고 시간을 제공하는 규칙적이고 예측가능한 이성적인 특성이고, 어두움과 술의 신 디오니소스는 감정적이고 즉흥적이다. 인류에게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누구나 이런 양면적 특성이 공존하고 있다.
건축적으로 합리성에 해당하는 것은 비례를 중시하는 르네상스 건축이 있고, 낭만성에는 바로크와 같이 절충적인 표형방식이 첨가되어 있는 파토스(pathos 정념, 충동, 정열)적 건축이 있다.
변증법적 방식을 사용하면 세상의 변화 방식을 이해하기도 쉽고 분류하기도 쉬우며 합리성과 낭만성이 순환하거나 교차하면서 발전해 나가는 방식에 쉽게 수긍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변증법적으로 '분류'한다는 것은 객체를 어느 한 가지 양식에 한정 짓는 폭력성을 띠고 있다.
건축적으로 생각하면 다양한 외적 변수에 대응하여 빚어지는 건축적 사건을 단순히 외관에서 보여지는 단순한 양태에 따라 구분하고 분류하는 것에 머무르는 수준 정도로 그칠 가능성이 있다. 건축이 표현되고 물질화되기 이전에 그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 벌어지는 정치, 경제, 사회적, 문화적 움직임은 간과하고 단지 형태만을 가지고 분류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양식적 변화 이전에 양식을 변화하기 만든 이면의 근본적 힘과 외적변수에 대한 배경 고찰이 부족해진다는 것이다.
르네상스 건축
다시 합리성과 낭만성으로 돌아와 르네상스 건축과 바로크 건축을 살펴보면 두 가지 대립적인 사유로부터 물질화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인식이 가능하다.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은 황금비례와 비율, 정확한 좌우대칭을 중시한다. 외부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모든 공간이 예측가능하고 내부공간의 체계가 외관의 구조와 일치되게 구축되어 있다. 즉, 내외부의 모든 구조와 공간이 이성적인 수학적 규범과 법칙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완전한 합리성과 이성중심의 체계가 물질화로 현시된 것이다. '아폴론적 건물'의 실현이다. 팔라디오의 빌라 로툰다가 그 대명사이다. 이 주택은 인간의 이성으로 지배되는 기하학적인 다이어그램 속의 물질과 공간이 명확하게 인식되고 지배되며 외부 풍경마저도 이성에 의해 명확하게 배치된다. 이른바 1인칭 시점의 건축 공간이다.
이렇듯 자연으로부터 주체의 독립과 함께 예측가능하다는 것은 근대 이성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근대 회화에서의 주요한 변화중 하나는 원근법과 1점 투시도의 발명이다. 데카르트적 사고방식이 회화에 투사되어 발전한 투시도 기법은 과학적인 방식으로 공간감을 부여하고 바라보는 주체의 시각을 절대화한다. 팔라디오의 주택에도 이것이 적용되어 있다.
르네상스 시기에 브루넬레스키는 인류 최초로 플로렌스 성당의 돔을 2중 쉘 구조를 사용하여 경량으로 구축하였으며 구축과정에서 장비의 한계를 넘어서서 혁신적인 새로운 장비를 사용하여 만들었다. 또한 르네상스 시기에는 이성적인 사고를 통해 합리적이고 선구적인 건축문화를 창조하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그는 고전적 축조방식에서 벗어나 기본 모듈에 의해 공간을 구성했다. 이 또한 이전 시기에는 보기 힘들었던 분업적 생산방식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시작했다. 이른바 근대적 분업화로 구축된 건축물인 것이다.
브루넬레스키의 다른 작품인 파찌 채플 역시 총체적인 이성적, 합리적 질서를 만들어낸 작품이다. 르네상스 건축물들의 특징인 1접 투시도법은 1차원적인 시점에서 도시의 풍경을 강조하여 생각하는 주체를 강조하는 근대정신의 산물임을 간파할 수 있다. 합리적, 이성적 방식으로 대상을 재단하고 주체적 시각으로 대상을 장악하고자 하는 의도가 반영된 결과물이다.
또 다른 대표적인 르네상스 건축물로는 팔라쪼palazzo와 알베르티의 플로렌스 성 마리아 노벨라 성당, 그리고 브라만테의 템피에토 등이 있다.
바로크 건축
르네상스 시기의 건축구성방식이 좌우대칭의 병렬juxtaposition적인 배치 및 형태였다면 바로크 시대에는 상호관입interpenetraion과 중첩superimposition이 주요한 키워드로 작용한다. 보로미니의 성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 성당의 외부에서부터 내부까지의 파동 치는 주름진 요소들은 단절 없이 각각의 흐름들을 만들어 내면서 펼쳐지고 결합되며 전체적인 시각으로 보았을 때 통합된 느낌을 주고 있다. 건축물 속의 수평의 유동적 선들은 수직선과 조화를 이루면서 함께 어우러지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바로크 건축(혹은 매너리즘 건축)은 파동형의 현란한 표현과 함께 페디먼트, 기둥의 크기와 위치 등이 비정상적으로 크거나 왜곡되어 변형되어 있다. 대칭, 비례, 질서, 조화 등의 2차원적인 건축원리보다는 변화와 변칙의 실험이 위주가 된다. 따라서 르네상스 건축물과는 달리 바로크 건축에서는 외부에서 내부를 상상하기란 불가능하다. 내부에서 외부를 상상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내부와 외부의 일체, 정신과 육체의 통합과 일체감을 주는 것으로 스피노자의 범신론(세계밖에 별개로 존재하는 인격신이 아닌 우주, 세계, 자연의 모든 것과 자연법칙을 신이라 하거나, 또는 그 세계 안 - 신과 세계는 하나 - 에 하나의 신이 내재되어 있다는 철학 )적 사고가 구체화 및 현시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바로크 건축공간은 타원형의 공간과 부속적인 타원형의 공간들이 비대칭적으로 붙어 있는 형태로 구성되어 한 공간으로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있다. 관찰자가 한 시점에서 보았을 때 통합적 시각을 제공한다. 장식과 유기적 형태의 공간이 일체화되어 시각의 이동에 따라 파토스pathos적 느낌을 연출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데카르트의 사고 및 스피노자의 사고와 르네상스 및 바로크건축의 내용에서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크 공간은 공간과 장식이 유기적으로 그대로 일체화되어 분리될 수 없는 통합적 성격을 지닌다. 마찬가지로 공간에 있어서도 큰 타원형 공간을 중심으로 부속되어 구축되어 있는 타원형의 공간이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있다.
그래서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의 사고체계를 바로크적 혹은 변종의 철학이라고 한다. 라이프니츠가 모나드라는 개념을 통해 주름과 펼쳐짐의 사유를 언급할 때도 역시 바로크를 사례로 담론을 펼쳤다. 바로크의 주름과 요철과 통합적 공간의 표현에는 정신사적을 그러한 철학적 담론들이 영향을 미쳤으며 동시대에 관련된 외적 변수들이 구체적으로 현물화되어있다.
바로크 건축은 라이프니츠의 경우 모나드가 펼쳐지는 것과 같이 우주는 궁극적으로 접선이 없는 곡선에 따라 물질에 곡선이나 소용돌이의 운동을 부여하는 작용적인 힘에 의해 압축되어 있는 것과도 같다. 들뢰즈가 모나드에 대해서 언급하고 표현하기로 펼침은 확실히 접힘의 반대나 소멸이 아니라 접힘 작용의 연속 또는 확장, 접힘의 현시되는 조건이다. 접힘이 재현되기를 멈추고, '방법' 작동, 작용이 되면 펼침은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표현되는 작용의 결과가 된다. 현대 철학자 들뢰즈는 두 층 사이, 두 미로, 물질의 겹주름과 영혼의 주름 사이의 상응과 소통까지 재현하는 방법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바로크 건축이 물속에 물고기가 역동적으로 움직여 파동으로 물결치는 호수와 같다고 표현한다. 들뢰즈는 우주는 궁극적으로 접선이 없는 곡선에 따라 물질에 곡선이나 소용돌이의 운동을 부여하는 작용적인 힘에 의해 압축되어 있는 것과도 같다고 표현한다.
바로크 건축의 기능은 주로 독방, 제의실, 지하납골당, 교회, 극장, 열람실, 또는 판화실이었는데 이것은 바로크가 역량과 영광을 끌어내기 위해 권위를 부여한 장소이다. 이렇게 바로크 건축물의 내부에는 핵심이 되는 다양한 콘텐츠들이 숨어들어있다가 펼쳐지는 듯한 느낌의 장식들이 공간과 일체화되어 존재한다.
변이의 사고와 이성의 진보 - 매너리즘과 수정궁
르네상스 시기는 경제의 주요 주체였던 대상인들에 의해 주도되기 시작했다. 건축사에서 팔라쪼는 사실 오늘날의 재벌가와 같은 상인들의 저택이 유형화된 것이다. 이 시기는 건축을 기술하는 역사상 처음으로 권력중심의 건축물(왕궁, 성)과 종교적 건물(성당)에서 상인이라는 계급의 개인 소유의 건물로 권력의 중심과 관심이 옮겨갔던 시기이다.
자본을 중심으로 한 공간으로 미켈란제로가 설계한 라우엔티안 도서관은 메디치 가의 수장품을 보관하기 위해 설계된 도서관 입구 부분에 위치해 있다. 벽은 지나치게 분절되어 있고 좁은 공간에 너무나 다양한 요소들이 꽉 차있어서 과시적인 공간은 강력한 인상을 준다.
매너리즘은 후기 르네상스의 주요한 흐름 중 하나이다. 매너리즘 건축은 자연을 출발점으로 삼는 대신 예술을 출발점으로 하여 개인의 독특한 취향의 해석을 부가한다. 쉽게 이해하자면 매너리즘 이란 르네상스 건물에 의도적인 변형을 가해 충격과 새로움을 주려는 사조이다. 음악의 변주곡이 주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일반적으로 매너리즘은 르네상스의 합리적 건축과(정) 바로크 건축(반) 사이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정도로 간략하게 설명하고 넘어간다. 그러나 이 매너리즘 건축이야말로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면 합리성과 낭만성을 넘어서는 복합적이면서 묘한 건축의 시발점이 되어 새로운 복합체(다양체)로서의 특이한 존재 혹은 사건이 드러난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야말로 진화를 촉진하는 변종의 건축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이 바로 변증법 체계로는 설명하기에 부족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1851년 영국 박람회에 등장한 수정궁은 헤겔의 절대정신이 마침내 구현된 듯한 신개념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주체와 객체를 의도적으로 구분한 사고체계는 이미 상당 부분 그 사고체계 내에 의도적으로 분리하여 구분하는 '폭력성'이 내재되어 있다. 계몽시대를 지나 과학의 발전으로 현란하게 사회가 진보되어 나가면서 과학적 진보와 함께 절대정신이 구현된 듯한 수정궁과 같은 공간이 나타났던 시기는 서구 열강들이 활발하게 세계로 진출하면서 강제로 식민전쟁을 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또한 이 시기가 이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던 시기와 묘하게도 맞아떨어지는 것은 우연한 일치가 아니다.
수정궁은 실제로 전시되는 품목을 식민지에 팔기 위한 제품의 산업기술력을 과시하는 내용이나 전시품목의 선정의 권위를 부여하는 세력과 수용자의 권력구조가 생겨난 장소이자 아케이드 건축의 효시를 이룬 건축이다. 많은 철학가들은 데카르트 이후 주체를 중심으로 하는 서구의 철학적 사고체계가 이러한 폭력성의 근원이며 이후 현대철학의 역사는 계속해서 모더니티와 이성적 사유의 폐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른 문제의식에서 시작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3 | 시사점과 건축적용 가능성
정신적 사유에 따라서 물질적 가치관 및 나타나는 물리적 양상은 매우 다르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현실을 바라보는 인식과 철학에 따라서 세상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사유의 방식에 따라서는 때때로 매우 폭력적인 양상으로 변화할 수 있다. 이러한 사유는 정치 및 이데올로기 또는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들러가 '난쟁이가 거인의 어깨를 짚고 멀리 내다본다'라고 말한 표현이 있다. 이것은 기존세계를 이해하는 방식과 지식을 덧붙여 실행했을 때 세상을 더욱 풍요로운 방식으로 넓고 싶게 이해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렘 콜하스 본인이 현대건축사에 남길 작품을 만들게 된 것이 본인 스스로 거장의 어깨를 짚고 더 널리 볼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했던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2부 | 모더니즘의 이면 / 건축적 가능성과 폐해
이번 장에서 다룰 모더니즘의 주요 철학자로는 칼 마르크스,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발터 벤야민, 그리고 알튀세르가 있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과 유물론을 융합하여 변증법적 유물사관을 역사철학적으로 정립했다. 화폐 및 자본의 근본적 속성을 파헤쳐 부조리한 사회적 특성의 요인을 분석했다. 이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자본론으로 귀결되었다. 소외와 노동개념, 노동시간개념, 프롤레타리아, 부르주아의 개념 등을 정립하는 등 자본에 대한 관념을 정립했다.
호르크하이머는 사상적으로 사회민주주의자이며, 학문적으로는 헤겔철학의 소양과 정신분석학의 지식을 결합시켰다.
아도르노는 양차 세계대전과 미국자본사회의 부조리함을 경험하고 이성중심의 사유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통해 체계성을 거부하고 근대문명에 대하여 독자적인 비판을 제시했다.
벤야민은 현대의 양면적 가치, 혹은 양립불가능한 가치(유물사관, 신학)를 변증법적 체계가 아닌 초월적 체계로 화해시키거나 소화시켜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의 저작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도시를 인간행위의 틀과 무대로서 표현하고 있으며, 건물, 공간, 도시환경을 구성하는 기념물과 대상물들을 인간의 사회적 행동패턴에 대응하는 것이라 표현하고 있다. 그는 암호해독적인 관상학적 시도(알레고리)로서 도시를 바라보았다. 글 속의 다양한 이미지들과 파편화된 글들이 초현실적으로 결합되어 새로운 글쓰기 표현이 되었다.
알튀세르의 주된 논쟁들은 사회주의의 이데올로기적 근거에 대한 여러 위협들에 대한 대응이었다. 그는 반인간주의, 잔경제주의, 반경험주의와 반주체주의를 주장했다. 프랑스 구조주의와의 교류가 없었음에도 알튀세르는 흔히 구조적 마르크스주의자로 불린다. 특히 그가 만들어낸 중층결정이론은 이후 포스트 마르크시스트들이 즐겨 차용하는 주요한 개념이 되었다.
1 | 마르크스 및 벤야민의 사유와 모더니티의 명암
마르크스의 사유와 이성의 명암
마르크스의 사상은 물질이 위주가 되는 존재론적 사고를 하는 유물론에 근거하고 있다. 사적유물론이라는 것은 헤겔의 역사적 흐름과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물질을 위주로 사유하는 사고체계라는 의미이다. 마르크스의 사회주의의 근원에는 '실천'을 통해 사회의 모순구조를 변혁시키고자 하는 열망이 가득 차 있었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집필했던 시기는 지금과는 달리 신흥 자본세력이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노동자들을 착취하면서 자본을 집적하던 시기였다. 당시에는 최저 임금제고고, 의료보험도, 어린이의 노동을 금지하는 법안도, 노동시간 규제 등도 없었으며 아무런 제재 없이 최대한의 이익을 취하기 위해 자본가가 노동자를 핍박하고 착취하던 시기였다. 마르크스는 사회의 모순구조를 밝히기 위해 정치, 문화 법률 등의 하부구조 개념을 만들어냈다. '심각한 사회적 불평들을 만들어내는 측면에는 경제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경제적 측면에서 인간을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라는 새로운 계급적 측면으로 구분하여 역학관계를 규명하려 했으며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단결하여 모순으로 가득한 사회를 전복시키고 프롤레타리아가 진정한 주인이 되는 사회를 꿈꾸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분법적인 구도와 사유방식을 생각해 낸 것이 공산주의라는 인류역사상 전대미문의 대규모의 폭력적 사회실험을 하게 된 사유의 시초를 제공하게 되었다.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의 사유체계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를 주축으로 한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양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데카르트 사고 체계 이후의 이성의 확신과 계몽시대 이후의 이성에 대한 맹종이 이러한 비참한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을 뼈저리게 인식했다. 특히 호르크하이머는 인간의 존엄성이 자본사회의 시스템상에서 교환가치와 도구적 이성으로 인해 심각하게 훼손되는 장면들을 목격했다. 인간을 '교환가치'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것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특성상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미국에서 자본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고 이성 중심의 현대 산업사회 일반이 총체적인 억압과 소외의 체계를 구축하게 되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서구문명의 결정적인 악의 화신인 히틀러가 불러온 재앙은 단순히 그 한 사람의 잘못된 생각만이 문제가 아니라 당시 독일인의 심리와 욕망이 대리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프롬이 생각하기에 인간 개인에게는 자신 스스로 독립적으로 꿋꿋하게 서려고 하는 것보다는 무언가 조직에 포함되어 안도하려고 하는 의식, 즉 굴종적(노예적) 자세나 심리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가학적인 사디즘적인 특성뿐만 아니라 스스로 피학적으로 고통받으면서 안심하고자 하는 마조히즘적인 심리도 있다는 것이다. 독일 국민이 경정적인 순간에 도피하게 된 것, 개인이 아닌 전체주의(파시즘)로 도피해 나가는 속성 그리고 열등함을 파괴의 본능으로 이끄는 인류의 본성, 즉 대중에 편승하려는 본성이 양차 세계대전이 인간의 이러한 특성에 의해 기인되었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데카르트적 사유의 폐해로 인식되는 '대상화'는 주체가 개념을 만들고 그에 따른 사물(객체)이 일치되는 것만을 인정해 왔다. 헤겔의 서구사상의 전통 하에서 주체의 생각을 우위에 두는 프레임 속에 대상을 분류하는 방식에서는 자연스럽게 사물(객체)은 대상화의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또 아도르노는 헤겔의 변증법이 부정의 부정을 긍정이라고 봄으로써 이전의 상황에 대한 부정으로 등장하는 새로운 상황을 무조건 긍정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오류를 범하였다고 본다. 헤겔이 부정의 부정을 긍정으로 간주한 것은 그가 주관우위의 관념론으로부터 사유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정, 반, 합의 매개적 사고는 하나의 정이 있으면 그것을 부정하는 '반'이 있는 대립적인 것을 통해 발전하는 방법론이다. 즉 부정의 부정을 통해 긍정을 만들어내는 동일포섭의 생각인 것이다. 동일화에 의해 억압된 것에 가려 표현되지 못하는 것들의 가능성의 영역을 끌어들이려 했다.
아도르노는 주체에 의해 객체를 대상으로 인식하지 않고 주체와 객체의 짜임관계를 중시한다. 객체 우위를 주장함으로써 비개념적인 것을 중시하며 관념론이 파시즘과 전체주의로 빠져드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하이데거 역시 관념론에 빠져있다고 비판한다. 헤겔을 관념론의 대표주자로 비판했지만 존재자를 존재자체를 통해 파악하는 행위 자체는 결국 주관적인 판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도르노의 짜임관계를 그레이엄 하먼의 객체지향존재론의 시초를 마련해 준 것으로 보인다.
헤겔의 관점에서 동일성에 포섭되어 개념이 되지 못한 것(비동일성)을 사고하는 것이 그에게는 중요하며 아도르노의 이러한 비동일자 중심 사상은 포스트모더니즘적 철학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알튀세르의 사고체계
마르크스 시대의 상황에서는 그 이데올로기 체계에 맞는 질문구조가 있었었고 그것이 당시에 합당한 답안을 만들어내게 된다. 그러나 새로운 형식의 답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야 하며 그 구조 자체에 새로운 해답이 있는 것이라고 알튀세르는 주장한다.
헤겔의 영향을 깊게 받은 마르크스는 헤겔적인 단순 매개구조(정 vs 반)에 집중한 마르크스의 사상은 당시에 매우 획기적인 사고였으나, 알튀세르는 이것을 전면으로 비판했다. 경제구조가 큰 요인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정치나, 법률, 문화, 사회적 요인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사회구조를 형성한다고 주장한다. 즉, 사회의 구조(억압과 착취, 통제)를 이루는 요소들이 레이어를 이루거나 인간의 오장육부가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서로 상호작용을 이루어 통제의 구조가 공고화되고 있다는 '중층결정이론'을 내세운다. 이것은 후기 마르크스시즘의 기본적 입장이 되었다. 지리학 분야에서 비판적으로 정치결제학적 논의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후기 마르크스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도시에서도 경제적인 것, 기타 사회문화 전반에 걸친 다양한 변수에 의해 영향을 받고 유기체와 같이 변화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그리고 알튀세르는 국가가 이러한 억압 및 착취구조를 공고히 하거나 안정적으로 하기 위해서 사회 전체를 공고한 이데올로기 체계로 만들었다고 한다. 특히 군대와 학교, 교도소와 같은 교정시설 등은 직접적인 '이데올로기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가 만든 것은 모든 사회구성체의 본질을 이루는 구조(토대)-상부구조의 복합체이며, 다양한 차원의 관계라는 새로운 개념이었다. 그러나 사회에서 존재하는 다양한 영역을 단일한 원인(신, 물질, 경제 등)으로 바라보는 것은 철학사에서 형이상학적인 것에 한참 동안을 매달려온 것과 별 다를 바가 없다. 알튀세르는 사회의 가지각색의 일상적 실천 속에서 이데올로기가 형성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데올로기 장치는 개인(주체)을 형성하는 이데올로기적인 것만이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제도적인 요소 역시 이데올로기로 보고 있다. 학교, 종교, 이익단체, 미디어 등의 요소들도 역시 이데올로기 장치로서 실생활의 구체적인 요소들을 통제하고 있다.
발터 벤야민과 모더니티
1750년대 산업혁명 이후 사람들은 전제국주의 압제에서 벗아나 새롭게 빠르게 변혁되는 시대적 상황에서 이성을 신봉하고 절대정신(변증법적 발전방향)에 도달하기 위해 과감하게 행동했다. <타이타닉>에서 당시 가장 규모가 큰 배로 가장 빠르게 유럽에서 미국 신대륙에 도달하려는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면서 기술의 발전을 시험 삼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 장면이 있다. 이런 장면은 이성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며 비극적 가능성의 요소들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또한 1936년 Casa del Fascio앞에서 광기에 사로잡힌 제국의 군중이 벌이는 집회는 모던시대의 양면성을 상징적으로 압축하여 보여준다.
이런 모던 시기 건축분야에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브 프로젝트」는 실제로 자본에 의해 나타나는 모던적 상업 공간의 여러 단상과 이미지를 수집하고 꼴라쥬하는 방법론을 통해 모던을 해부하고 새롭게 바라보려고 시도했던 탁월한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다. 그는 도시를 인간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틀과 무대로서 표현하고 있으며, 건물, 공간, 도시환경을 구성하는 기념물과 대상물들을 인간의 사회적 행동패턴에 대응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는 암호해독적인 관상학적 시도(알레고리)로서 도시를 바라보았다.
하이데거적인 사유를 했던 발터 벤야민은 1) 사적유물론과 메시아적 구원관을 통합하여 사고하기 2) 알레고리의 시각으로 자본주의 바라보기와 같은 사유체계로 변증법적 체계가 아닌 초월적 체계로 화해시키거나 소화시켜 표현하려 했다.
그는 서구 역사를 바라보는 두 개의 축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기술과학의 발전이 전제되는 사적유물론과 메시아적 구원관이라는 축이다.
그는 서구의 이성주의의 산물인 계몽주의가 인간의 이성을 극도로 신봉함으로써 유토피아와 같은 종합 및 '진보'를 하지만 결국 종착역은 '파국'으로 결말지어질 것이라고 믿었다.
근대적 이상향의 사고는 신들의 이상향의 사고이며 그 자리에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던이 만들어내는 양태들은 그래서 인간적일 수 없다. 이렇게 신화화된 세상에서 인간적인 요소를 고려하고 대중적 취향으로 변화시키자는 것이 바로 이후 나타나게 된 '포스트모던'의 대략적인 방향성이다.
알레고리는 이중적 의미를 가진 이야기 유형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알레고리라 함은 기존에 너무나 유명해서 잘 알고 있던 시노하나 역사적 사실, 설화가 바탕이 되어 새로운 이야기 형식이나 표현형식으로 표현되었을 경우 이전의 역사적 기억과 함께 상당히 복잡한 연상 작용과 함께 심상가운데 새로운 의미들이 구축되는 복잡한 작용을 말한다.
벤야민의 알레고리에서는 신학과 사적유물론등의 두 가지를 같이 보아야 인류 및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헤겔의 이상론인 이데아론 및 정신(관념론)과 이성세계를 구성하는 것은 바로 물질이다. 그는 유물론적 사유에 영향을 받아 물질관계가 바뀌면 정신도 바뀔 수 있다고 생각했다. 메시아가 도래하는 순간은 인간세계의 신화적 열정, 감정 생산력이 포화상태에 있을 때 일어나게 되었고 인류의 가장 큰 문제는 기술의 진보와 분재와 평등이 평행하지 않고 기술만이 훨씬 더 빨리 진행되고 있었다는데 그 원인이 있었다.
아도르노가 얘기했듯 전쟁이 일어나는 원인은 (1) 기술 생산력이 포화되어 더 이상 진보될 수 없을 때이며, (2) 인간의 정신이 퇴화되거나 야만회되었을 때 라고 한다.
파시즘은 강자에게 더욱 힘을 실어주고 억압해도 된다는 생각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고 약자는 더욱 억압해도 된다는 그릇된 관념을 주입시켰다. 히틀러는 니체의 초인 개념과 헤겔의 진보적 역사성을 지닌 절대정신이 바그너의 민족주의 음악에
영향을 받아 그릇된 방향으로 결합된 사유 및 행동방식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18세기의 '계몽주의'는 인간의 '이성'을 신봉했던 사유체계이며 유토피아 주의는 같이 통합되어 '진보'하여 결국 종착역으로 이르게 되는 파국이라고 벤야민은 생각했다. 벤야민은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며 신학으로서의 대안을 찾아보려 했다. 그리하여 '통합될 수 없는 신학과 사적유물론을 어떻게 결합시키고 종합시켜야 할 것인가'가 그에게는 계속된 화두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양극적 사유'를 추구했던 철학자라고 할 수 있다. 변증법적 사유체계를 떠나 알레고리적으로 사유하려 한 것이다.
벤야민은 파국으로 치닫는 모던을 신화적인 담론체계라고 간주했다. 기술과 합리성이 '신'이 되고 구체적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화 구조 속에서 사이렌은 배가 다가오면 노래를 불러야만 한다. 그래서 신화적 존재는 운명에 묶어 오도 가도 못하는 기계적 구조인 것이다. 모던의 체계에서 개인은 존재가 아닌 기능으로서 살아가게 된다. '합리성'이라는 집체화 속에 나 자신을 구속시키는 체계이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려는 것이 벤야민의 알레고리적 시선이다. 가치판단은 지배층의 위계구조를 대변하는 것이다. 언어와 의미만 무효화시키면 물질만 남게 된다. '가치구조'는 우리가 만든 것이다. 단어를 응시한다고 했을 때, 모든 것을 제거하면 '글자 자체'만 남는다. 도시 역시 도시의 물리적 구조를 제거하고 보면 그 이면의 그림자와 찌꺼기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클레의 그림 새로운 천사는 벤야민의 멜랑콜리적 특성을 잘 드러낸다.
"역사의 천사도 바로 이렇게 보일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들 앞에서 일련의 사건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바로 그곳에서, 그는 잔해 위에 또 잔해를 쉼 없이 쌓이게 하고 또 이 잔해를 우리들 발 앞에 내팽개치는, 단 하나의 파국을 바라보고 있다. 천사는, 머물고 싶어 하고, 죽은 자들을 불러 일깨우고, 또 산산이 부서지는 것들을 모아서 다시 결합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천국으로부터는 폭풍이 불어오고 있고, 또 그 폭풍은 그의 날개를 꼼짝달싹 못하게 할 정도로 세차게 불어오기 때문에, 천사는 그의 날개를 더 이상 접을 수도 없다. 이 폭풍은 그가 등을 돌리고 있는 미래 쪽을 향하여 간단없이 그를 떠밀고 있으며, 반면 그의 앞에 쌓이는 잔해 더미는 하늘까지 치솟고 있다. 우리가 진보라고 일컫는 것을 바로 이 파국을 두고 하는 말이다."
벤야민, 역사철학 테제 중, 아홉 번째
역사적 의미가 지워진 상태에의 역사적 의미를 판독하려는 시도 때문에 벨야민은 '이미지의 철학자'라고도 불린다. 그는 이것을 아케이드 프로젝트로 진행시켰다. 파리의 카페-파사쥬-시선 등을 통해 의미의 층위를 벗겨내고 무효화하는 것, 그리고 나타나는 형상이 무엇인가를 드러내려고 하는 본래의 것을 보여주는 작업, 이것이 아케이드 프로젝트가 지향하고자 하는 바였다.
생산과 소비는 삶과 죽음(폐기)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의 Mode(유행) 특성을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운명을 지닌 것으로 생각했다. 이것은 반대로 보면 새로움이 끊임없이 폐기물로 폐기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벤야민의 파괴적, 파토스적 시선은 고정된 요소를 해부하고 개편하는 유목민적인 과정의 진행이다. 역사적 의식을 지니는 것을 다시 한번 파괴하고 새로 정립시키는 것, 파괴적이고 디오니소스적 특성은 활발하고 무언가의 생성력을 가지고 있다. 기존의 흔적을 없애고 새롭게 생성할 수 있는 힘이 있다.
폐허는 항상 한 때의 화려함을 간직하고 있다. 화려한 과거가 없었던 공간은 폐허가 될 수 없다. 현재 보이는 화려함 이면의 폐허로 남을 수 있는 요소들을 동시에 통찰할 수 있어야 한다.
유행이 점점 빨라지는 것, 생성과 폐기의 속도가 빠르게 반복고 있는 것 자체를 자연사의 축소로 생각했다. 자연사는 자연적 시간이 있으나 생성, 폐기가 빨라지면 생성과 폐기가 동시적 시간이 될 것이다.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닌 것과 같이 문지방 영역도 공간으로서 존재하며 마치 동시적 시간의 교차영역과 같은 시간이 있듯이, 벤야민은 생성도 아니고 소멸도 아닌 혁명의 메시아적인 시간이 올 것이라고 보았다.
벤야민은 이런 시대상에서 과거의 역사(텍스트)에 기대지 않고 그것을 이용하여 새로운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병치의 방법론을 사용한다. 수술대 위의 우산 같은 초현실주의적 기법으로, 기존의 것들이 어떻게 배치되느냐에 따라서 다른 감각과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해체주의의 병치효과와 정크스페이스로 대변되는 대규모 쇼핑공간의 맥스 믹스의 효과 등이 그러한 요소들을 실험할 수 있는 건축적인 기법이다.
여러 개의 파편들이 모인 것이 모자이크가 되고, 모자이크는 더 큰 시각에서 하나의 의도와 형상을 인지할 수 있다. 과거 속의 기억의 파편이 조합되면서 거대한 하나의 이미지가 되듯, 벤야민은 짧은 단상을 통합하여 거대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꼴라쥬의 방법론을 사용했다.
벤야민의 양극단의 사유와 해체주의의 사유는 유사한 부부이 많다. 양극단의 틈과 사이에 주목하여 양극단을 다른 차원에서 통합하여 사유하는 것이다.
건축물은 항상 그 시대의 사회집단의 꿈을 반영하여 물성화된다. 아케이드는 자본의 발전과 함께 근대성이 꿈으로 나타난 꿈의 집이었으며 도시의 꿈이 현실회된 세계이다. 아케이드와 쇼핑공간은 당시 새로운 유형의 유혹과 욕망이 교차하면서 꿈과 파멸을 동시에 내포한 환등기 속의 환상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듯한 공간이다. 사람들은 아케이드의 만화경 같은 세상 속을 부유하듯 거닐며 만보객들은 화려한 상상을 하게 되지만 화려한 이면에는 그 생산물을 만들기 위해 처저한 환경 속에 투입된 어린 손길들의 눈물과 땀이 감추어져 있다. 벤야민은 파토스적 시선으로 그 이면의 것들을 보려 했고, 이성의 파국을 방지하기 위한 끊임없는 개편과 진행을 추구했다.
2 | 이성의 시대, 건축적 가능성과 폐해
모더니티의 발전과 마르크스 사상의 출현
신고전주의 속에서 모더니즘의 기운이 태동하던 시기에 대가인 슁켈은 고대 그리스 건축을 새로운 재료와 기술로 재해석하며 최초의 기능주의자로 거듭났다. 앙리 라브루스트의 파리 도서관 역시 철의 건축적 응용을 성공하며 새로운 형식의 건축물을 창조했다. 그러나 이성을 향한 맹신은 점차 대담해져 루드, 비올레 르 뒤크 등 건물에서 인간이 배제되는 듯한 느낌의 이상주의 건축도 등장했다.
산업혁명 이후 대량 생산방식으로 철골구조와 철근 콘크리트, 유리가 제작되며 새로운 건축의 태동이 시작되었다. 돔-이노 구조가 탄생했고, 기둥과 슬래브만으로 독립적으로 안정한 구조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구조 덕분제 국제주의 양식 5원칙이 만들어졌지만, 그 이면에는 다분히 폭력적이거나 오만한 측면이 존재한다. 세계 각국의 풍토와 재료, 문화, 역사를 불문하고 새로운 방식의 주거를 어느 곳에 이식하여도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에는 이전에 살펴보았던 절대정신의 발전과 이성의 맹신과 함께 폭력적인 구석이 존재한다. 이는 제국주의적인 발상과 별다를 바 없다. 인간의 감수성과 정서를 무시한 기능주의적인 배치와 무표정한 주거군의 양산은 기존 전통과의 단절과 소외, 도구적 이성의 모던적 폐해를 극대화시키는 공간적 모순을 양산시켰다는 단점으로 남게 되었다.
모던적 사고의 체계에 있어서 또 하나의 폐해는 반복적 증식이 일반화된다는 것이다. 산업혁명과 기술의 혁신적 발전 그리고 삶의 질의 발전 등이 모티브가 되었던 모더니즘적인 사고는 오히려 인간의 삶의 질을 하향평준화시켰다. 경제성, 합리성에 근거한 규칙과 교리가 최우선된 건축이 일반화되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이다.
중세시대의 모든 삶의 과정들의 최종열매가 열리는 곳, 혹은 권력이 집중되는 곳은 마을 중심의 거대 장소인 교회당이었다. 근대의 아케이드가 그러한 공간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으며 중세의 신의 역할은 물신적인 상품으로 대체되었다. 오늘날 자본사회에서 그러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곳은 각 지역마다 존재하는 거대한 쇼핑몰(아케이드)이다.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실험과 한계
자본주의의 폐해를 바라보며 마르크스 사유체계가 등장했다. 당시의 사회주의자들은 혁명 후 전 인민을 바람직한 사회주의적 방향으로 개조하기 위해 사회주의적 추상성과 혁명성을 수행할 수 있는 새로운 삶을 담는 건축을 추구해서 그것은 사회적 응축기라는 실험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기념비성과 운동성은 역동적 사회분위기를 담보하는 산업적 기계적 미학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혁명의 유토피아적 이데올로기는 권력층이 안정기에 들자마자 억압되며 사라졌다. 자본사회에서 유토피아적 이미지들은 돈 많은 부르주아의 도덕적 타락을 가려주기 위한 방법론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대부분이다. 모더니즘 초기의 아방가르드적 예술가들의 형태가 사실 부르주아들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프롤레타리아들을 더욱 억압하고 착취구조를 더욱 고착화시키는 방식에 일조했다고 볼 수도 있다. "착취하는 현실을 가리기 위해 장밋빛 청사진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예술가나 건축가가 나서서 대리적으로 해주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유죄이다." 혹은 "아방가르드 예술도 생산양식의 순환주기로 편입되었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팝아트부터 레디메이드등, 쓰레기까지고 생산과 소비의 순환체계 안으로 끌허들이면서 예술이 자본의 순환구조를 당연시하게 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타푸리는 꼴라쥬의 방법론은 부정한 현실을 가려주면서 이상향의 세계를 보여주는 방법론으로 변질되기 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건축에 이데올로기적 의상을 입히려는 기만적 노력보다는 그것에 비효율적이며 기만적인 혁명적 의도를 주는 것에 의해 차분하고 시대를 넘어서는 순수성을 말하는 용기를 지닌 자의 성실함을 좋아하게 될 것이다." - 만프레도 타푸리
건축물을 형태상으로 분류하거나 형태와 공간등에 집착하여 표현하는데 매진함으로써 마치 가면을 쓰는 것처럼 혹은 진한 화장을 하는 것처럼 건축에 선동적인 이데올로기 장치나 표현을 덧붙이는 시도들을 지양하고 오랜 시간 동안 그 지역에서 순수한 건축적 구성으로 남아있을 수 있는 건축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자본체계 하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어쩌면 저항적 감성의 건축적 실천만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치열한 자본사회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방법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3 | 시사점과 건축 적용 가능성
마르크시즘은 이성적 사고의 폐해와 자본의 폐해에 대한 대안적 사고였다. 이성주의는 합리성을 추구하는 기능주의적 건축의 형태로 발현되었고, 그에 혁명적으로 반하는 러시아 아방가르드는 형식주의적 건축을 수립했다. 그러나 형식주의적 예술 역시 권력층이 엘리트들의 예술을 도구로 사용해 부를 휘어잡고자 하는 방법론에 불과했으며, 러시아 아방가르드는 출현과 동시에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오늘날 렘 콜하스가 이론과 실무가 적절히 잘 결합되어 있는 훌륭한 건축가로 인정받고 있는 이유는 시대가 원하는 근본적인 생산양식을 수용하면서 유토피아적 감성도 함께 집어넣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상품에 가치가 있다는 물신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데, 가치는 사실 사회적인 관계에서 파생되는 것이다. 모더니티와 모더니즘은 사회적 관계의 결과인 상품의 가치를 마치 상품 자체에 실체적이고 자연적인 속성에 근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착각을 가져오게 된 것이다.
동일성은 다양한 현실을 이성이 판단하는 바에 따라서 많은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성에 의해 현실이 동일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사실은 매우 폭력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선형적인 내용의 논의를 펼치는 경우, 반드시 일종의 시간 개념 및 목적론적인 발전의 방향성에 마르크시즘을 의미하고 있다. 변증법적 유물사관적인 내용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비선형적인 움직임을 중시하는 후기구조주의적 사유와 문화활동은 비선형적 체계는 일방향의 전체주의적 방향성을 지닌 것들을 극복하고자 하는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건축학도들은 이러한 부조리한 구조의 내용들을 온전하게 대리해 주는 하수인의 역할에서 창조적으로 저항적 감성을 지닌 건축가로 거듭나야 한다. 완전히 거부하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저항적 감성을 창조적으로 융복합시켜 양쪽의 요구를 적절하게 조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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